매번 독자로서 관심 있는 영화의 편지만 받아보다, 처음으로 적는 입장에 슬쩍 서봅니다. 스파이더맨의 새 시리즈 개봉 이후 <호프>의 상영관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죠. 무엇보다 4DX 체험이 꽤 입소문이 났던 작품이라, 일찍 끝나버린 특별관 상영도 관객수 감소에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8월 4일 오늘 기준 400만 명가량의 관람객이 집계된 상태인데, 지금까지 체감된 반응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합니다.
처음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지극히 K-관객스러운 입장에서 원초적인 분노를 느꼈습니다. 이 작품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알기 어려웠고, 중반부 이후로는 그저 무력해졌으며, 마지막에서야 번역된 외계인들의 대화에 이르러 헛웃음마저 튀어나왔죠. 함께 봤던 친구도 마찬가지의 감상을 표했기 때문에, 그날의 저녁식사는 한숨과 토로가 절반 이상인 수다로 점철되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오는 길에 홀로 대중교통에서 곱씹다 보니, 우리의 개인적인 분노는 어쩌면 나홍진이라는 유명 감독의 이름과, <곡성>이라는 독보적 아우라의 전작에서 비롯된 기대가 무너진 혼란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홍진 감독이 폭력과 믿음을 두 축으로 삼아 빚어온 필모그래피나, <곡성>이 그려낸 압도적인 연출의 분위기에 휩쓸려 <호프>마저 그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라고, 또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보게 된 것은 아닐지. 그래서 집에 도착한 이후 감상을 정리하면서, 선행되었던 감정들을 걷어내고 영화를 재차 복기했습니다. 그러자 제목의 <호프>, 즉 희망은 누구의 것인지 묻고 싶은 마음과 함께 이 작품의 분절적인 구조에 대해서도 조금 더 너그러운 관점에서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오프닝에서 성기를 비롯한 마을의 사냥꾼 청년들은 길목 한가운데 쓰러진 싸움소를 발견해 출장소장 범석에게 신고합니다. 처음에 그들은 이를 호랑이의 소행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읍내로 향하던 범석이 발견한 것은 그보다 더욱 거대하고 흉폭한 무언가가 지나간 흔적들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처참하게 죽어 있고 낡은 가게들이 무력하게 무너져 있습니다.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읍내 곳곳을 헤매며 조사하는 범석은 곧 일부 생존자들과 차례로 마주칩니다. 그들은 괴물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이미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석은 러닝타임의 1시간 지점쯤에 다다르기 전까지, 호포읍 주민들이 목격한 괴물, 처치하려다 실패한 괴물, 그들의 사망을 불러온 괴물과 만나지 못합니다. 대신 이 한 시간 동안 우리는 범석의 시점을 공유하며, 나홍진 감독의 유려한 서스펜스 연출을 즐길 수 있습니다. 오히려 문제의 괴물, 실상 외계인들 중 하나인 바미기르가 등장하여 범석과 성애가 탄 순찰차에 쫓기기 전까지 이 영화의 질문은 ‘괴물은 무엇인가’에 집중한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가 펼쳐보이는 서사를 따라가는 데 충실한 관객이라면 당연히, 이제 이 괴물을 어떻게 처단하면 좋을지, 또는 처단하기까지 무슨 일들이 벌어질지 기대하면서 다음 장면들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나 바미기르는 압도적인 피지컬을 보여주며 공포의 추격을 견인하던 것도 잠시, 곧 탱크로리에 치여 육중한 바퀴 아래 짓밟히고 처리됩니다. 호포항의 영문 모를 재앙이 소강 상태에 이른 듯한 착각마저 들지만, 러닝타임이 반절쯤 남았다는 걸 깨닫고 나면 약간의 소름이 돋습니다. 이제부터 한 시간 반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런 질문으로 경로가 변경되면 관객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호포항에 찾아온 것처럼 보이는 희망은 그러나 다음 순간, 성애가 확보한 해술 할아버지의 진술에서 (“세 마리여!”), 그리고 범석이 찾아간 양배의 집에서 (“갸가 그럼 지 새끼를 찾으려고 그랬나?”) 전복됩니다. 범석의 추측대로, 양배에게 죽임당한 어린 개체를 찾기 위해 외계인이 날뛴 거라면, 그런데 그 외계인이 한 마리가 아니고 세 마리였다면, 이 재앙같은 재난은 해결의 실마리가 이미 잘려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범석은 일행을 이끌고, 육촌인 성기가 향한 산으로 차를 돌립니다.
현대적 형태의 영화에 이르면서, 어떤 작품이 속한 장르를 논하는 것은 이따금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멀티 장르, 복합 장르, 장르 융합이라는 호명 아래 이제 영화는 하나의 스타일만을 따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호프>는 그중에서도 유독, 장르의 분류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는, 장르를 논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시피 느껴지기도 합니다. <호프>는 외계인과 우주선이 등장하는 SF영화지만, 동시에 80년대 한국의 한 항구마을에 들이닥친 재난을 보여주는 재난영화이기도 하며, 추격전과 총격전이 난무하는 액션물인 동시에, 미지의 존재를 따라가는 스릴러의 문법도 갖추고 있습니다. 나열된 장르들은 헐거운 설정들로 삐걱대거나 (도무지 경위를 알 수 없는 쿠얼의 함선), 지금까지의 클리셰를 가뿐하게 무시하고 (재난영화의 진부한 캐릭터상을 벗어던진 디자인), 때로는 넘치는 연출력에 기대어 훌륭한 장면들을 보여줍니다. 일종의 변종처럼도 보이는 이 작품이 제목 그대로의 기묘한 희망처럼도 느껴지는 건 아마도, 손쉽게 사람들의 시선을 훔쳐가는 숏폼의 범람 속에서 3시간 남짓의 기나긴 러닝타임을 가진 이 영화가, 좋든 나쁘든 관객들을 극장으로, 또 극장 바깥으로 이끌고 다니는 동력 덕분일 거예요. 이 작품을 접한 관객들은 4DX관의 익스트림한 관람을 놀이공원 체험처럼 받아들이기도 하고, 또 저마다의 감상이나 비판을 말하기 위해 각자의 자리를 찾아내기도 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영상을 올려 <호프>의 숨은 설정이나 앞으로의 전개를 분석하는 유튜버가 나오는가 하면, 유명 평론가의 별점에 과도한 훈수를 두는 네티즌도 나옵니다. 어떠한 방식이든, 어떠한 이유로든, <호프>와 연결되고자 하는 관객이 이토록 많이 등장한 것은 제법 고무적인 풍경처럼도 보입니다. 저 또한 그렇게 분노했던 <호프>에 대해 리뷰를 쓰고 또 편지를 적고 있으니, 아무래도 우리는 조금씩 ‘<호프>당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26년 8월 12일
박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