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는 영화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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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큐레이팅

자칫 지나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을 독자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영화들이 여러분께 닿기를 희망합니다.  

2026년 1월

<일요일의 사람들>(로버트 시오드맥, 1930)

로버트 시오드맥, 빌리 와일더, 프레드 진네만 등 훗날 할리우드의 거장이 된 영화인들이 청년 시절 함께 만든 <일요일의 사람들>은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 베를린의 공기를 생생하게 포착한 무성영화입니다. 작품의 초반, 우리는 자막을 통해 출연진 모두가 비전문 배우이며 촬영 후 각자의 직업적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접하는데요. 반제 호수로 떠난 네 남녀는 수영하고, 춤을 추고, 사랑을 속삭이며 일요일의 해방감을 만끽합니다. 어느새 짧은 휴일이 지나 월요일이 돌아오면, 카메라는 작별 없이 사라진 인물들을 대신해 평일의 무표정한 리듬으로 익명의 군중을 비춥니다. 약 25년 후 독일로 귀환한 시오드맥이 역사적 광풍에 휩쓸린 전후 베를린을 배경으로 극영화를 찍었단 사실을 떠올리니, 잊힌 얼굴들을 위한 도시교향곡처럼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함윤정)

2026년 2월

(다미앙 마니벨, 이가라기 고헤이, 2017)

<슈퍼 해피 포에버>와 정반대의 계절로 설정된 이 영화는 한겨울의 고요함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일찍이 어시장으로 출근하는 아버지의 시간을 풍경에 녹여내는 것으로 시작해 홀로 모험을 떠난 어린 소년의 (의도치 않은) 묵언 수행을 백지장 같은 설경 위에서 펼쳐내는데요. 대부분의 대사가 생략된 채 오로지 소년의 몸짓으로 가득한 이 영화는 무성영화 속 배우가 만들어 내는 제스처의 긴장감을 오버랩 시킵니다. 두 명의 감독은 어린아이 특유의 서투르고 산만한 몸짓을 인내심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모조리 담아내는데요. 귀엽다는 인상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의식하지 않았던 몸짓의 메커니즘이 낱낱이 기록됩니다. 소년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집으로 복귀하지만, 그건 이 몸짓의 모험이 수많은 즉흥성을 수용한 끝에, 어른들의 머릿속에 든 데이터로는 수급되지 않는 경로를 뚫었기 때문 아닐까요. 배우라는 피사체가 줄 수 있는 최대치의 흥미로움을 선사하는 이 몸짓들이 시나리오에 어떻게 쓰여 있었을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변해빈)

2026년 3월

(스티븐 소더버그, 2024)

소리 소문 없이 개봉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소더버그의 <프레젠스>를 추천합니다. 이 영화는 항상 3.5 점을 목표하듯 적당한 무게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소더버그의 톤 앤 매너를 여전히 증명합니다. 무엇보다 영화 ‘보기’의 즐거움에 대해 곱씹게 되는 <프레젠스>는 모든 장면이 귀신의 시선으로 펼쳐집니다. 물론 이번 그 아이디어는 대체로 ‘실패’라는 평가를 받은 것 같지만, 충분히 단점이 아닌 흥미로움으로 바라볼 수 있는 구석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결말을 마주한 뒤 영화의 이야기를 되돌아보신다면, 그 괴이함과 흥미로움이 상당한 재미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실상 극장을 패스하고 VOD로 직행한 듯한 아쉬움을 느끼며, 이 영화가 더 많은 분과 만나기를 바랍니다. (이광호)

2026년 4월

(1974) 노무라 요시타로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을 영화화한 <모래그릇>은 속절없이 대물림된 허기의 역사를 끊어내려 발버둥 치던 한 인간의 추악하고도 초라한 삶의 족적을 느린 걸음으로 추적합니다. 1971년 도쿄, 신원미상의 60대 남성 변사체 사건을 조사하게 된 베테랑 형사 이마니시는 현장에서 발견된 단서를 근거로 탐문수사를 진행하는데, 피해자와 함께 술집을 동행했던 의문의 남자에 대한 증언을 듣습니다. 카메라는 줄곧 형사의 끈질긴 시선을 쫓으며, 아무도 찾지 않아 해어진 진실과 진심을 복원하려 분주히 공간을 넘나듭니다. 우발적 사건이 미스터리한 개인의 일생을 경유해 시대의 거친 궤적 안으로 파고드는 몸부림이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아지랑이 넘실대는 초록빛의 여름 풍경 안에서 토해내는 거친 열기와 고조되는 피아노 선율은 시간의 공백을 뛰어넘어 우리를 그 비극의 장소로 데려다 놓습니다. 발을 내디딜수록 푹푹 빠져버리는 모래처럼, 어쩌면 세상에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 있는 게 아닐까요? (이하늘)

2026년 5월

올드 랭 사인 (2007, 소준문)

짧은  단편이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영화 <올드 랭 사인>을 추천합니다.  청년 시절에 사랑을 나누었던 두 노인이 우연한 계기로 함께 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이 영화는 서울의 낙후된 풍경, 모텔의 꿉꿉한 공기, 노인과 퀴어라는 타자를 다루면서 잊기 힘든 사무침을 남깁니다. 으레 영화 평가에 있어 단점으로 평가받는 요소인 기술적 투박함과 노골적인 대사들은 오히려 이 영화에서 강점으로 작용하고, 외려 동시대 한국 단편 영화들이 가지지 못한 아름다움이 곳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특히 두 사람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엔딩은 거의 심장을 후벼파는 듯한 강렬함으로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추천을 드리는 지금 기준으로 유튜브에 “[퀴어영화] 올드랭사인” 이라는 제목으로 영상이 올라와 있습니다. (이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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