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는 영화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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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 2023년 12월 - <괴물>

서버 : 이광호 / 리시버 : 강소정

인식의 한계는 시지각적 한계를 포함하지요. 서로 다른 시선을 통해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타인에 대한 지각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봅니다. 내 지각의 틈새로 빠져나가는 타인. 엄마의 사랑을 다 해도 자식을 눈 안에 붙잡아둘 수 없어요. 미나토는 좁은 실내 공간을, 혹은 사오리의 시야를 계속해서 빠져나갑니다. 사오리가 방문을 열면 미나토는 그곳에 없고, 부상 소식을 듣고 학교로 달려갔을 때도 보이지 않죠. 사오리와 호리가 태풍에 쓰러진 전차의 창문을 겨우 열었을 때도 그 안에 미나토와 요리는 없었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겨요. 타인에 대한 지각의 한계를 다루는 이 영화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인물에게 밀착된 시각을 관객에게 제공하는가 하는 것 말입니다.

“소위 ‘열린 결말’이라고 하지요. 결말이 현실이냐 환상이냐 하는 물음을 제기하면서 얼핏 관객에게 선택지를 열어주는 것 같지만, 사실상 어떤 트랙을 선택하든 하나의 주제로 수렴된다는 점에서 ‘열림이라는 이름의 닫힘’에 가깝다는 것이지요. 관객의 인지능력을 적극적으로 가동하며 속된 말로 ‘밀당’을 하는 것인데, <괴물>에서는 그 밀당이 애초부터 ‘답정너’의 영역 안에서 전개됩니다. 소정 님의 ‘틈새’라는 표현을 빌리자면, 이건 통상적으로 우연과 상상에 열려있다는 의미의 틈새라기보다는 최종장을 위해 의도적으로 계획된 고안물에 가깝다는 것이지요.”

39호 2023년 11월 - <플라워 킬링 문>

서버 : 한창욱 / 리시버 : 이광호

“백인들의 카메라로 관찰되고 기록되었을 뉴스릴의 사실주의적 재현은 오세이지족에게 허락되지 않고, 죽음을 앞둔 오세이지족의 눈에 비치는 환상적 존재인 올빼미는 결코 백인들의 세계에 개입하지 못합니다. 마틴 스코세이지라는 한 영화감독에 비춰보자면, 소싯적 그가 탐독했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같은 유럽의 예술 영화적 양식과 거대 자본과 체계로 무기로 사람들을 매혹시킨 고전 할리우드 영화의 모델이 동시대에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환유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문득 마틴 스코세이지가 마블 영화를 비판하며 동시대 영화 세계에는 ‘콘텐츠’와 ‘시네마’가 분리적으로 공존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떠오르네요.”

“그가 헤일의 범죄를 증언한 것은 ‘반성’ 같은 걸 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이의 죽음에 슬퍼한 뒤, 가족과 함께 있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그건 반성이기보다 사적 소망일 뿐입니다. 어찌 보면 낯짝이 참 두껍습니다. 그는 몰리의 가족들을 해치고 몰리에게 슬픔을 안겨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도리어 가족으로 돌아가고 싶다니요. 반성하고 싶다면 차라리 감옥에서 평생 썩으며 가족에게서 멀어지는 편이 더 반성에 가까울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는 몰리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스코세이지는 몰리가 묵묵히 어니스트의 재판을 지켜보도록 합니다.”

38호 2023년 10월 - <잠>

서버 : 이광호 / 리시버 : 한창욱

“가족 내 ‘역할’에 대한 공포감은 대체로 현수의 몽유병으로 우회하여 드러나다가 수진의 이상 행동으로 선회하게 됩니다. 이때 수진은 귀신에 대한 설명을 PPT로 보여주는데, 영화관에서 이 장면을 보면서 웃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어처구니없기도 하거니와, 꽤 재미난 발상이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마치 ‘PPT 귀신’이 수진의 몸에 씌인 듯하달까요? (…) 집으로 회사 일을 가져오는 수진의 반복된 모습과 ‘역할’에 대한 알레고리적 측면을 생각해 보면, 수진의 관념 속에 자리한 자기 역할이 무엇이었을지 우리는 그 장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카메라와 녹음기로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믿음’을 소재로 꺼내드는데요. 이 도전적인 선택 앞에서 <잠>은 영화의 근본적 난제와 부딪히기보다는, 그저 관객의 주목을 현수에서 수진으로 돌린 뒤 후반부의 장르적 무대를 마련하는 장치로 소모하는 데 그칩니다. (…) 이 심리적 전환 이후 관객은 수진에게서 멀어지면서 가까워지는 이상한 상태로 진입합니다. 사실상 이제부터 수진은 더 이상 구체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이라기보다는, 극의 재미를 이끄는 진정한 구경거리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37호 2023년 9월 - <콘크리트 유토피아>

서버 : 한창욱 / 리시버 : 함윤정

“아파트는 ‘공동체적이면서도 반-공동체적인’ 공간입니다. 공동체를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배제를 지향하는 모순적 공간이죠. 그게 한국 사회의 많은 면모를 대변합니다. 그것은 아파트라는 건물 자체가 주는 모순이기도 합니다. 아파트는 그 중심성과 고정성을 너무 의기양양하게 뽐내면서도, 동시에 많은 것들을 수용하고 가둠으로써 탈-중심적, 탈-고정적 측면을 함께 지닌 모순된 공간입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이와 같은 모순성을 서사 내부에 표명하면서도 상업적 야심이 몽땅 그 모순성에 대한 함의를 잡아먹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기존의 체계가 유명무실해진 상황 덕에 영탁의 집은 세범의 것이 됩니다. 정확히는 ‘김영탁’이란 이름에 ‘모세범’의 육체가 덧씌워졌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처럼 세범에게 재난은 어떤 면에서 구원의 계기가 되지만, 혜원의 등장으로 그 상상적 지위의 균열이 드러납니다. 결국 정체가 탄로 난 세범은 입주민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데요. 저는 이때의 대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내가 902호 김영탁이야!”라는, 어딘가 비틀린 이 호소에는 기존 체계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꾸며낸 현실에 동참해 주길 바라는 심리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세범은 상대를 죽여 상황을 초기화하겠다는 삿된 발상을 재차 실천하고 말지요.”

36호 2023년 8월 - <보 이즈 어프레이드>

서버 : 이광호 / 리시버 : 김신

“왜 이리 모든 인물이 적대적이고,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적이어야만 하는 걸까요. 왜 지브스는 충견처럼 보를 죽어라 쫓는 걸까요. 토니는 왜 페인트를 마셔 자살하고, 왜 분홍색이 아니라 파란색을 선택하는 걸까요. 모나는 어떻게 다시 살아나게 된 걸까요. 물론 항상 저는 관객이 의도와 무관하게 스크린 속 요소들을 조합해 내면화하는 서사적 주체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비난만 해서는 안 되겠죠. 하지만 대체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이건 단지 관객에게 거는 사악한 게임일까요?”

“주인공 보는 자신이 느끼는 주관적 경험을 객관화해 서술할 역량이 파산된 것처럼 보입니다. (…) 보는 트라우마에 사로잡혀있는 것은 물론, 부모가 아닌 다른 유형의 타자에 대한 실감도 극히 희박합니다. 우리는 친구나 연인을 비롯한 여러 사회적 관계를 맺는 활동마저 계급적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세계를 살고 있으며, 그런 관계로부터 단절된 보가 오늘날의 주변화된 남성성을 드러낸다고 말하는 견해는 물론 타당할 것입니다. 위에서 제가 한 얘기와 연관 지어 단적으로 말한다면, 그렇게 소외된 보는 편지를 교환할 수 없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겠죠.”

35호 2023년 7월 - <카일리 블루스>

서버 : 강소정 / 리시버 : 한창욱

“어떻게 이름들이 시가 될 수 있을까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 그 이름들이 <카일리 블루스>를 만든 사람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오프닝 크레딧은 영화의 허구적 세계로 들어가는 문턱이죠. 그런데 그것이 하필 천성이라는 인물을 소개한 직후에, 그의 음성을 통해 발화된 것은 정말 이상합니다. (…) 이렇게 이 영화는 프레임과 음성을 매개하여 아주 간단하게 공존 불가능한 두 세계 사이의 빗장을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저는 이 숏에 잠재하고 있는 운동이 언어라는 형식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도약하는 시의 운동과 유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도식만으로 붙잡기 힘든 신비스러움을 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그 도식성 자체가 서사 내부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소정 님의 말마따나 “허구와 현실 중 어느 차원에 속하는지 결정되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 도식은 도식인데, 닫히는 도식이 아니라 여전히 열려 있는 도식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불가피하게 열려 있는 듯한 도식은 소정 님의 말처럼 “비인칭적 시선에 담긴 정처 없이 떠도는 움직임”과 분명하게 관련되는 듯합니다. 분명 목적지가 있고 가는 길도 아는데, 이상하게 배회하게 되니까요.”

34호 2023년 6월 - <파벨만스>

서버 : 김보년 / 리시버 : 홍은미

“귀엽고 유쾌하게 그려지기는 하지만 새미가 만든 영화는 다들 폭력적입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만들 때 새미는 가장 즐겁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 저는 <파벨만스>가 하나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하고 복잡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파벨만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가족의 사랑과 소중함인데, 새미가 만드는 영화 속 영화에는 이 가족이 부서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굉장히 흥미롭지만, 동시에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그가 만든 영화들은 무언가를 파괴하지요. 하지만 실제로 완전히 부수지는 않습니다. 그가 유년기에 만든, 기차와 무언가들이 충돌하는 영화에서는 충돌이란 극적인 운동이 일어나지만 실제로 부서진 것은 없습니다. 새미는 미치에게 자신이 찍은 영화를 보여주며 “잔뜩 충돌시켰는데 기차는 안 망가졌어”라고 말합니다. (…) 말하자면 파괴보다는 그 상황을 연출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심층적인 욕망이 작동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33호 2023년 5월 - <다음 소희>

서버 : 조현나 / 리시버 : 한창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희의 이유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다만 억지로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끝내 우리가 소희의 이유를 없다고 인정하는 전제 아래에서, 이유를 궁금해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부재한 사람이 끝내 하지 못한 말을 이어가 보려는 시도, 부재한 말의 정체를 결코 밝힐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재현되지 않은 말을 상상하고 접근하려는 시도는 의미 있는 일이라 믿습니다. 그가 남긴 우리의 숙제를 말하기 위해서 말이에요.”

“감독의 바람이 반영된 정의로운 인물이 현실을 고발하고 피해자를 위로하는 데까지는 나아갔으나 이상으로 넘어가진 못했습니다. 어떤 면에선 실패가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판타지적인 인물조차 넘을 없는 벽을 마주했을 다시금 소희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소희와 유사한 위치에 놓인 콜센터의 다른 동료들 또한 비로소 함께 바라보게 됐습니다. <다음 소희> 실제 사건에 기반을 픽션이고 비슷한 일들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기에, 현실과 완전히 유리된 작품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32호 2023년 4월 - <애프터썬>

서버 : 함윤정 / 리시버 : 한창욱

“제게 성인 소피는 그녀가 느끼는 캘럼만큼이나 미지의 인물입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기억이 재구성한 캘럼처럼 어떤 상태로서만 제시되지요. <애프터썬> 기억이 재구성이라는 사실만으로 호들갑을 떨지 않지만, 오히려 기억을 재구성하는 성인 소피라는 인물의 모호한 자기완결성 안에서만 작동합니다. 도식적인 장면을 흩뿌린 야무지게 회수하던 감독은 정작 동성의 연인이 있는 소피에게 어떻게 아기가 있는지, 심지어 아기의 존재조차 해명하지 않습니다.(…) 저는 기억 혹은 이해의 실패에서 발생할 있는 아득한 정서가 산화된다고 느꼈습니다. 일반적인 작법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던 영화가 영화 바깥에서 법한 어떤 마땅함에 기대는 것도 같았고요.”

“신나게 즐기라면서 소피를 수영장에 던져 넣고는 수구를 하는 성인 남성 사이에서 어쩌지 못하게 방치하는 것만 같죠. 영화는 중간 과정을 생략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캘럼도, 소피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 더욱더 중요하게 다가온 문제는, 카메라가 대체 어떤 시선으로 소피를 보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소피에게 닥칠지 모르는 위태로움을 염려하면서 쳐다보는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냥 태평하게 쳐다보는 같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영화 자체가 어린 소피를 성인처럼 대하는 같기도 한데, 그런 태도가 도저히 성인이라고 없는 소피의 작은 신체와 엇나가면서 이상한 기운을 만듭니다.”

31호 2023년 3월 - <바빌론>

서버 : 홍은미 / 리시버 : 강소정

“무성 영화의 시대는 이렇게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고요. 물론 무성 영화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셔젤은 시대가 지나도, 이들이 이런 비극적인 죽음을 맞아도 스크린 위에선 영원하리라는 점을 강조하고, 배우들이 사라져도 수많은 이의 욕망 안에서 재능을 타고난 스타들이 계속해서 탄생한다는 점을 은근히 피력하려 했을지 모르나, 저는 시대상의 부산물처럼 인물상만이 남아있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힘들었습니다. (…) 어쩌면 자신의 욕망을 수긍하는 것이겠지요. 영화와 영화 산업이 태생부터 지닌 욕망도요. 포화 황홀한 줌을 포착하려는 욕망, 눈물 방울의 파동을 일으키려는 욕망, 거대한 난장 속에서 영화사를 격렬하게 쓰고 싶은 욕망을 수긍하며 이런 거창한 영화를 만들었겠지요.”

넬리는 정말 현실에서는 엮이고 싶지 않은 인물이지요. 초대받지 않은 파티에 그것도 마당의 조각상을 박살 내며 등장해서는 매니에게 자신이 타고난 스타라고 뻔뻔하게 말하잖아요. 그런데 등장 씬은 넬리에 관한 은유로 짜여있습니다. 넬리는 조각상처럼 굳어진 것을 깨부수면서 초대 명단이 가리키는 세속화된 안으로 불쑥 들어온 겁니다. 문명/문화에 균열을 내는 본능/자연의 존재라고 할까요. 넬리는 파티장의 코끼리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파티에서 코끼리를 보고 싶어 할까요? 막상 마주하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갈 거면서요.”

30호 2023년 2월 - <아바타 물의 길>

서버 : 김보년 / 리시버 : 한창욱

“<물의 길>은 다른 생물종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너무 지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이를 지키지 않는 툴쿤 사냥꾼들은 죽어 마땅하다고 이야기하는 중인데, 다시 보면 우리에게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냐고 (얄밉게) 묻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질문에 저는 ‘당연하지’라고 말할 자신이 없고요. 이런 미묘한 지점들 때문에 <물의 길>이 <아바타>보다 더 재미있게 다가오고, <물의 길>이 그렇게 안전하기만한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설리는 아들에게 군대식 규율을 강제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설리의 그런 태도가 변화될 것을 기대하게 합니다. 군대식 규율을 강제하는 것은 아버지로서 좋지 않은 행동이란 점을 느끼도록 하죠. 마일즈 대령은 군인으로서 적을 제압하는 것을 명분 삼아 복수에 열중하면서도, 아버지라는 정체성이 복수를 잠시 중단시키는 시점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물의 길>은 ‘군인-되기’와 ‘아버지-되기’를 서로 불화하는 구도로 놓습니다. 군인-되기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된 아버지-되기에 이를 수 있다고 역설하는 것만 같죠.”

29호 2023년 1월 - <아마겟돈 타임>

서버 : 홍은미 / 리시버 : 이광호

“이 영화 전체에 무겁고 어두운 공기가 내려앉은 느낌입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개인적인 인상일 테지만 이 영화에선 몸까지 눅눅하게 만들던 물기어린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고 약간 건조하고 묵직한 공기의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폴이 할아버지 애런과 모형 로켓을 발사하는 순간 하늘로 슉 치솟는 로켓을 보고 속이 뒤집히는 듯한 경험을 하면서 저 로켓이 무거운 공기를 가르며 오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선 공기를 타며 완만하게 낙하하고 있다고요. 그 장면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가 파티장을 나서 걸어가는 과정에는 어떠한 방해물도 없습니다. 폴은 연설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너무나도 쉽게 그냥 문을 열고 나와버리죠. 한편으로는 거의 폴의 상상이 아닐까 할 정도로요.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그것이 저항적인 행동이나 해방적인 몸짓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점이겠지요. 폴은 무척이나 자유롭게 퇴장하지만, 서사를 따라온 우리에게 폴을 구속하는 요소들이 너무도 많기에 이 장면은 감각적 지점에서 반전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대단히 묵직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하고요.”

28호 2022년 12월 - 선량한 사람들의 세계

그에게 감동하게 , 선배가 회식 자리에서 참치 먹는 법으로 면박을 때였습니다. 다른 사람들마저 민망해하는 분위기에서 그가 행동은 선배의 말에 따라 방식대로 참치를 먹어보는 것이었죠. 순간 보여준 염창희의 포용력, 유연성에서 저는 삶에서 가져야 태도를 목격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는 불만도 많고, 누나와 툭하면 으르렁거리고, 과거에 돈사고도 쳤고, 솔직함을 내세우며 가족들 앞에서 철부지 같은 소리를 잘도 늘어놨었지만, 먹고사는 일의 준엄함 앞에서 성격을 꾹꾹 누르며 사는 근면성실한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때의 염창희는 참은 아니라 사람과 상황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염미정이 환대라고 말한 순간이 거기에도 있었습니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하나가 해방클럽 사람들이 오는 카페에서 마주 앉지 않고 각기 창밖을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억지스러워 보이고 믿기 힘들 있는 장면은, 인물이 그동안 보인 성격이나 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에 믿음직해 보였습니다. 장면은 그들을 개별적 존재로 인식하게 하면서도 서로 충분히 함께 있을 있는 사람들로 위치 지었습니다. 그러한 거리감과 관련해서 <나의 해방일지>에서 저에게 믿기지 않으면서도 흥미로웠던 () 서로를 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그러면서도 신경은 쓰고 있는 듯한 시선과 발걸음의 리듬이었습니다.

27호 2022년 11월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저는 영화에 조이와 에블린이 돌이 되었을 오히려 평화로움마저 느껴졌습니다. 황량한 세계를 마지막 일말의 힘으로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눈이 주어졌을 , 스스로를 추락시켜 황량한 세계를 깨부수고 어지러운 세계 안으로 제대로 진입하려는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에 울컥했습니다. 어쩌면 창욱 님이 말한붙잡음 정서를 저는 추락의 행위에서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만큼이나 <에에올> 강력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바로 양자경의 존재입니다.

스타도, 요리사도, 소시지 손가락도, 세탁소 사장도 모두 노동을 수행하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를 지킵니다. <에에올>은 스타-에블린을 통해 스타-양자경을 반영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스타-양자경을 존재론적으로 평등한 우주에 거주하게 합니다. 그리고 은미 님이 말씀처럼 “강직한 표정과 날렵한 몸짓과 기를 모은 손끝의 다부진 모양새가 세계의 연결점”이 되면서 양자경의 신체가 그 모두를 수렴합니다. 한 사람의 신체가 존재론적 평등의 연결점이 되는 점이 참 재밌습니다.

26호 2022년 10월 - 놉

서버 : 이광호 / 리시버 : 한창욱

 “섣불리 과거의 사건을 기원으로 여기며 신화화해 존경의 대상을 물화한다는 근심에 공감하였습니다. 저에게도 영화는 그런불경한 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저는 점이 재밌었습니다. 과거의 사건을 기원화하고, 그것을 신화화하면서 대상을 물화하는 시도를, 영화는 말장난으로, 혹은 테마파크의 풍경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니까요. 영화는 하늘에서 동전이 떨어지던 장면부터 끝날 때까지 일관적으로, 우리가 일시적으로나마있음직한세계로 받아들이고픈 디제시스 내부 세계를 세트장의 풍경처럼 만들어 버립니다.

 제게 장면은 영화가 도입부에 제시한 자신의 질문을 해결할 없다며 고백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 후반부에서 OJ 럭키를 타고 사막을 달립니다. 그것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고, 재킷을 처리하고 나서 완전한 영웅의 모습으로 럭키를 OJ 결말을 장식하죠. 하나의 신화적인 이미지 같기도 하고요. 거기에서 우리는 OJ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머이브릿지의 이미지에서 마침내흑인 기수 집중한 것이라고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은 럭키를 대상으로 취급하며 얻어낸 결과물이 아닐까요?

25호 2022년 9월 - 썸머 필름을 타고!

서버 : 김보년 / 리시버 : 강소정

“저는 설정을 통해 맨발이, 그리고 감독이 영화를 얼마나 진지하게 좋아하는지 느낄 있었습니다. 자신이 찍은 영화의 결말이 마음에 들면 얼마든지 다시 찍을 있고, 그걸 욕할 사람도 없습니다. ‘감독판이라는 말을 붙여도 되고, ‘멀티 엔딩이라는 근사한 표현을 써도 되겠지요. 하지만 맨발은 자신이 만든 영화에 가지 결말을 두고 싶지 않았던 같습니다. 여기에서 조금만 생각을 밀어붙여도 된다면, 저는 <썸머 필름을 타고!> 영화와 실제 삶을 같은 항에 놓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없듯이, 하나의 영화는 오직 하나의 세계만 만들 있습니다.”

“좋아하는 감정의 대부분이 이렇게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은 그 마음이 발현되는 모습인 것 같았습니다. 영화부의 카린이 연출한 영화를 보죠. 주인공이 장소와 상황을 바꾸며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외칩니다. 영화 제목 그대로 좋아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에 반해 맨발은 그 마음이 발현된 다른 형태들을 발견합니다. 공이 글러브에 안착하는 소리만 듣고도 투수 이름을 맞추고, 조명을 직접 디자인하고 배치하는 친구들에게서요. 사무라이 영화의 제스처를 구분하고 흉내 내는 맨발 자신도 있고요. 이렇게 특정 감각에 예민해진 이들이 모여 영화를 만듭니다.”

24호 2022년 8월 - 헤어질 결심

서버 : 한창욱 / 리시버 : 홍은미

서래는 부서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습니다. 그녀는 사라져 해준의 심연에서 살아가기로 결단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 거창해서 저는 그 상황에 오히려 몰입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을 다투며 벌이는 전화 통화의 긴장감, 그 와중에 전하는 서래의 문학적인 고백, 치밀하게 계산된 자살 계획이 안기는 서스펜스, 약간의 흔적만이 남은 모래더미 위에서 무너지려 하는 남자의 비애를 현현해 내는 파도 사이에서 많은 이들은 감정의 우아한 격랑을 보았을지 모르나, 저는 너무 많은 장치의 결합을 보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번역 대상이 된 존재와, 스스로 번역 대상이자 주체임을 선언하는 존재의 화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은미 님께서 “너무 거창해서” 몰입하지 못했다고 짚으신 지점은 저에게도 몰입의 순간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너무 거창해서 몰입할 수 없었기에 도리어 그 과잉된 언어의 앙금이 남았습니다. 도저히 동일시될 수 없는 존재, 혹은 스스로 동일시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동일시를 바라는 존재가 남기고 가는 호소처럼 여겨졌거든요.”

23호 2022년 7월 - 브로커

서버 : 한창욱 / 리시버 : 이광호

“서사에 관련해서 제가 의문이었던 영화의 인물 누구도 자기 집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수진과 이형사는 거의 영화 내내 자동차 안에만 있는데, 캠핑카도 아닌 차에서 식사도 하고 잠도 자는 장면이 나오는 보면서 기이함은 대체 뭔가 싶었습니다. 주인공 5인방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이렇게 집어놓아서 그렇지 영화를 당시의 느낌을 떠올려보면, 저는 <브로커> 인물들이 차에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어딘가에서 부유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히로카즈의 이전 작품은 안팎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불안한 관계들을 주시했고, 그 불안한 관계는 그의 작품을 주목하게 하는 주요한 양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브로커>는 안팎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없앰으로써 오히려 물리적, 심리적, 관계적 이질성에서 발생하는 긴장감마저 지워버립니다. 그리고 그 지워진 긴장의 빈자리에는 감독의 의도성이 묻어나는 조급한 발화들로 채워지죠. (…) 일본 바깥의 한국에서 만든다는 점이 도리어 경계의 긴장감을 약화시키는 아이러니라도 발생시킨 것일까요?”

22호 2022년 6월 - 우연과 상상

서버 : 이광호 / 리시버 : 홍은미

“사람은 한없이 나약하기에 다른 이와 필수적으로 대면해야만 하는데, 서사는 거기서 발생한다고 영화는 믿는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영화에는 물리적 대면 상황이 (좋든 나쁘든) 이야기와 관계를 이어가고, 반대로 인물이 자리를 뜨는 행위는 그걸 중단하는 약속처럼 설정되어 있죠. 그래서 화면은 기교 없이 멀끔하지만, 조금만 바뀌더라도 금세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는 점에서 영향받기 쉽고 예민한 사람을 닮았습니다. 나아가 외부의 침투로 세계가 단숨에 무너지고는 하죠.

“저는 ‘비가시적 활동’을 ‘촉각적인 활동’이라고 달리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 활동은 세가와 교수가 문을 열어두기를 고집하기에 외부에서 침투해 들어오는 사람들의 인기척과 장력을 일으키며 성적 긴장감을 드높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낭독을 이어가는 중에 몸을 살짝 움직여 세가와 교수방의 문을 슬며시 닫는 나오의 부드러운 움직임과, 닫힌 문을 다시 열려고 문 앞으로 다가서는 세가와 교수의 느릿한 움직임이 어떤 신체적 접촉보다 에로틱한 행위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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