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는 영화 비평

비평의 큐레이팅

자칫 지나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을 독자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영화들이 여러분께 닿기를 희망합니다.  

2024년 12월

레드 로켓 (션 베이커 감독, 2021)

관객 입장에서 영화 관람의 재미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특정한 문제의식을 중점으로 하여, 하나는 감독이 기획한 프로그램을 어떻게 성취해나가는지를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짓궂지만 그 문제의식 앞에 그가 얼마나 곤경에 빠져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션 베이커의 <레드 로켓>은 후자의 관점으로 즐길 만한 작품입니다. 그의 필모 중 유일하게 중년 백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 영화는 상대적으로 이야기되지 않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드러난 그의 곤궁에 집중하신다면, 즉각적인 불편함 이면의 많은 재미를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꽤나 당혹스러운 결말을 마주할 독자분들의 의견이 궁금해집니다.(이광호)

2024년 11월

돌들이 말할 때까지 (김경만 감독, 2024)

기록이  필요한 존재가 있습니다. 역사로 지시되어야 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은 외력에 부닥치고 휩쓸리면서 점차 말을 잃고 사라질지 모릅니다. 김경만 감독의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그런 존재의 위급함을 화면에 담습니다. 세차게 울렁이는 파도가 바위를 내려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훗날 바위는 파도의 위력에 의해 산산이 흩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돌은 자신의 실존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사라지기 전에 그것을 피사체로 남길 시선이 필요합니다. 자연의 역동에 대답할 또 다른 역동이 시급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4.3 사건 생존자들이 마주했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떤 것을 해결하고자 했는지 듣고 그 의미를 다시금 새깁니다. (한창욱)

2024년 10월

그 여름날의 거짓말 (손형록 감독, 2024)

영화는 두 고등학생이 여름방학 동안 흔히 겪어내기 힘든 사건을 따라갑니다. 첫 연애, 첫 이별의 경험이 아무리 강렬하다 해도 상식적으로 감당키 어렵게끔 몰아붙이는 영화의 선택을 마냥 따라가기란 버겁습니다. 인물들은 우리에게도 솔직하지 않고 끝없이 진실과 거짓,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미끄러집니다. 하지만 다른 이의 짐작이 귀속되지 않으려는 그 활력이 이끄는 미스터리로 답답한 현실을 은유할 뿐 아니라 인물들의 죄책감과 상처를 스산하고 애잔한 방식으로 번갈아 위무합니다. 두 배우가 터트리는 정념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자신을 지키고, 더불어 그들을 ‘어린애들’로만 응시할 수 없게 합니다. 올해 한국 독립영화 중 기술적으론 다소 서툴지만, 단순한 상투어로 마음을 휘청이게 하는 힘을 지녔습니다. (변해빈)

2024년 8월

우리와 상관없이 (유형준 감독, 2023)

올해 극장에서 본 가장 기묘한 영화였습니다. 시적인 대사들, 동굴과 미로를 연상케 하는 흑백 화면, 연기를 이어가야 하는 배우의 삶, 그러나 자신이 주인공이었던 작품의 줄거리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까지… 모호하고 미묘한 설정으로 가득하지만 그렇다고 불확정성에서 오는 감각만을 무기로 삼고 작가적 야심만 앞세우는 영화는 아닙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영화 시사회가 끝난 직후에서 시작해서 오디션을 치른 과정으로 끝난다는 설정입니다. 이는 시간은 어떻게 흐르고 우리가 어디쯤에 갇히는지 묻게 하면서도 판본의 문제를 곱씹게 합니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를 두고 각 사람들에게 줄거리를 물어본다면 어떻게 말하고 달라져도 이상하지 않지만, 같은 결과물을 보고 왜 다 다르게 이야기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말하듯, 분명히 있는 저편의 다른 세계에서 픽션 혹은 세상은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갱신되고 있는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이보라)

2024년 7월

아듀 필리핀 (자크 로지에 감독, 1962)

바캉스  떠나기 좋은 계절인 여름입니다. 아직 계획을 잡지 못하고 고민 중이라면 자크 로지에의 <아듀 필리핀>을 추천합니다. 사실 여름 하면 에릭 로메르의  <여름 이야기>를 떠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겠지만, 그전에 <아듀 필리핀>이 있었습니다. 여름은 옷에 감금된 몸을 개방하기에 적절한 계절입니다. 이러한 여름의 속성은 영화의 민낯을 드러내기에 거침이 없습니다. 영화는 흑백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물의 발길이 닿는 곳곳마다 관성적으로 여름날의 기억을 복원합니다. 또한 비전문 배우 기용, 이동 촬영, 서사의 배제, TV 스타일 등은 이 영화가 감각적으로 발산하고자 하는 자유로운 아우라의 실체입니다. 제목에서 ‘필리핀’이란  단어가 어떠한 의미도 내포하지 않듯이 영화는 유희에 가까운 청년들의 몸짓과 언어로 여름의 향취를 뿜어내며 안녕(아듀)을 외칩니다. (이현동)

2024년 6월

대화의 가능성 (얀 슈반크마예르 감독, 1982)

<대화의 가능성>은 해괴한 표현력과 초현실적인 상상력을 뽐내는 체코의 애니메이터 ‘얀  슈반크마예르’의  대표작입니다. 우리는 그의 영화에서 사물화된 인간 형상과 마주합니다. 실제 배우와 점토 퍼펫을 조합한 스톱모션을 보고 있으면 마치 살아있는 동시에 죽어있는 듯한 움직임에 오싹한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지요. 총 3부로 이루어진 단편 <대화의 가능성>에는 의인화된 사물들이 등장합니다. 도구와 재료들의 집합이 서로를 삼키다 뱉어내고, 엉겨 붙다 떨어지며, 화해하다 불화하길 반복합니다. 매번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내는 그 리듬이 마치 페어 안무를 추는 댄서들의 몸짓 같기도, 앙숙 간의 격렬한 전투 같기도 한데요. 오랜만에 비평의 편지를 쓰며 저는 이 영화를 떠올렸고, 과연 우리의 대화는 어떤 모양이며 또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함윤정)

*(유튜브 링크 : 대화의 가능성) ‘Dimensions of Dialogue’로  검색하면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24년 5월

플라이트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2012)

<플라이트>는 이미지가 줄 수 있는 감각의 종류를 두루두루 탐구합니다. 극 중 덴젤 워싱턴이 연기하는 인물은 시종 술과 마약에 중독되어 있는데, 영화는 마치 술이 주는 몽롱함과 마약이 주는 각성의 효과를 온몸으로 체화한 듯 움직입니다. 두 장면이 떠오릅니다. 도입부의 비행기 사고 장면, 후반부의 청문회 전날 밤 시퀀스를 직접 살펴보신다면 그와 같은 각성과 이완의 효과를 몸소 체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미지가 주는 두 종류의 쾌락을 극단적으로 오가지만, 결말 직전의 청문회 시퀀스에서 이 영화는 앞선 장면들이 선사했던 유려하고 황홀한 리듬을 걷어내고, 사진 한 장의 효력에 집중합니다. 무난한 서사와 감독의 솜씨로 훌륭하게 손질된 영화적 쾌감에 안착했던 관객에게도 이는 당황스러운 순간이 되는데, 언뜻 범상한 할리우드 영화의 외형을 가진 <플라이트>가 특별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광호)   

2024년 4월

오데트 (칼 드레이어 감독, 1955)

모든  영화가 극장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고, 영화를 상영하는 모든 공간이 극장과 같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칼 드레이어의 <오데트>는 우리가 떠올리는 보편적인 영화 상영 장소로서의 극장을 반드시 요구합니다. 어둠 속에 감춰진 시선과 그 시선이 바라보는 백색 스크린을 외면하고서 이 영화에 관한 경험을 거론할 순 없습니다. <오데트>는 어둠 속에서 빛을 증언하는 영화이고, 그 증언의 단계를 거쳐 도착하는 기적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사라졌다가 되돌아온 자의 말과 시선에서 도래합니다. 영화라는 토대 위에서 기적은 벌어졌습니다. 예수를 자처하던 요하네스는 죽은 잉거를 되살려냅니다. 그런데 영화는 어떻게 기적을 표상할 수 있을까요? 어둠, 죽음, 되돌아온 자, 어린아이, 시선, 부활, 시계, 키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벌어진 모든 것들이 제겐 경탄스러운 미스터리입니다.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언젠가 이 미스터리에 응답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김병규)   

2024년 3월

팀북투 (압데라만 시사코, 2014)

아프리카  몰리의 압데라만 시사코 감독이 만든  <팀북투>를 소개합니다. 이 영화는 몰리의 한 도시인 팀북투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인적이 드문 사막에서 살아가던 한 가족이 뜻하지 않게 겪는 불운이 영화에 담겨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느리게 전달되지만 마지막까지 우리의 마음을 놓지 않습니다. 내용만큼 시각적 요소도 주목할 만합니다. 무엇보다 사막의 풍경이 우리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광활한 모래밭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불안하고 기약 없는 미래를 드러내고, 그것에 대비되는 도시와 강줄기는 혹독한 삶의 또 다른 양상들을 보여줍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동물과 인간, 자연이 관계 맺으며 빚어내는 사나운 운명을 목격하고, 인간의 문명 및 문화가 억압적 체제와 뒤얽히는 서글픈 동거를 바라봅니다. 한 무리의 소년이 군인들에게 축구공을 빼앗기자 마임을 하듯 축구를 하는 모습은 환상적이면서도 기이한 정감을 자아냅니다.  (한창욱)   

2024년 2월

노베어스 (자파르 파나히, 2024)

자파르  파나히의 <노베어스>는 어느 영화감독 이야기를 담습니다. 권력의 감시와 검열로 인해 영화를 만들기 어려워진 한 영화감독이 어느 시골에서 뜻하지 않은 곤란과 마주합니다. 거기서 우리도 여러 감정적 동요와 긴장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또한 이 작품은 영화감독에 관한 영화인만큼 필연적이라 생각될 정도로 영화 매체 자체를 탐구하게 합니다. ‘카메라’라는  장치가 증명의 역량 및 그 책임과 연루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데, <노베이스>는 그러한 카메라의 인증 능력을 사회,문화적 인증과 엮으며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매체의 성격을 반성적으로 주시하게 하면서도, 사회/문화적 인증과 관련한 공동체 내부의 문제마저 생각하게 합니다. 한 영화감독이 생각지 못하게 어느 공동체의 문제에 ‘얽히게’ 된다는 점에서 예술 창작 및 관람이 공동체와 맺는 기묘한 긴장관계도 들여다보게 합니다. (한창욱)   

2024년 1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나타샤 메르쿨로바, 알렉세이 추포프, 2023)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는 스탈린 공포정치 시대의 비밀경찰 이야기를 담습니다. 주인공인 볼코노고프 대위는 조직의 충성스러운 대원이었다가 점차 자신이 맡은 임무에 대해 회의하고 조직을 탈출하여 피해자 가족에게 진실을 털어놓고 죄를 용서받으려 합니다. 이 영화는 경찰의 추적과 볼코노고프 대위의 도주가 만들어 내는 추격전으로부터 긴장감을 만들면서도, 더 중요하게는 볼코노고프가 잘못을 시인하기만 하면 자신이 용서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 미련하고 순진한 모습에서 여러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그것과 더불어 이 영화는 경찰 말단 요원들의 맹목적인 정신을 기계적인 신체를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하면서 공포정치가 인간의 신체를 어떻게 다루는지 지켜보게 합니다. 그러한 신체 표현은 이 영화의 주요한 미학적 전략으로 자리합니다. (한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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