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는 영화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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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큐레이팅

자칫 지나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을 독자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영화들이 여러분께 닿기를 희망합니다.  

2020년 9월

여름날 (오정석 감독, 2020)

한편의 완성된 영화를 볼 때, 대부분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은 감독의 의도나 계획된 방향이 맞아떨어진 소위 OK컷입니다. <여름날>을 이루는 장면들은 이러한 약속을 통과한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녹화가 실행된 이후 선택된 것만 같은 느낌을 줍니다. 연출 내지 편집에서 기본을 이루는 OK와 NG라는 이름 대신 그 사이의 시도 TAKE를 추출한 것 같다고 할까요? 많은 이가 영화적인 감각을 실현하는 데에는 무엇보다 ‘쓸모없음’이 중시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종종 그 쓸모없음은 모던하다거나 잉여적이라는 부수적인 수사와 함께 미학에 편입되기 위한 개념적 구실로 이용된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름날>이 수행하는 쓸모없음은 다시금 그 무용과 잉여라는 그 고루한 말의 생을 되살려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여름날>은 무엇보다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영화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게 <여름날>은 영화 감상에 있어 (어떤 종류로든) 거의 피하기 힘든 얼마간의 긴장을 풀어준 영화로 남아있습니다.(이광호)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후보 감독, 2020)

이 영화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크리틱b라는 비평지에 제 글이 실렸습니다. 이 영화는 비간 감독과 함께 중국 8세대 감독으로 꼽히기도 하는 후보 감독의 데뷔작이자 마지막 작품입니다. 그는 2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영화에는 그의 뚝심과 결기가 어려 있습니다. 중국 인민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염려가 담겨 있습니다. 황폐해진 땅과 공동체를 지켜보고, 그것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고민했던 시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만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인물의 신체와 영화의 형식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 결기와 염려, 고민을 담기 위해 4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젊은 기운이 생생하게 요동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여러분께서 코끼리의 울음으로부터 무엇을 느끼실지 궁금합니다. (한창욱)
2020년 10월

도망친 여자 (홍상수 감독, 2019)

<도망친 여자>는 “역시 홍상수다운 무엇!” 이 아니라, 오히려 그간 홍상수의 매력이자 종종 자기복제라는 이름으로 관객을 질리게 했던 음주 요소가 희미한 홍상수의 신작입니다. 전혀 특별하거나 도드라져 보이지 않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창작자의 야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합니다. 이 야심 작은 영화는 흥미롭게도 그 작은 야심 탓에 영화의 근본적인 지점을 자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공간과 장소라는 측면에 집중했던 저에게 이 영화는 그간 영화에서 당연시되었던 것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해 주었고, 흥미로운 고민거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광호)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김미례 감독, 2019)

김미례  감독은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반대하여 전범 기업의 사옥을 폭파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이야기를 포착합니다. 40여 년이나 지난 일이기에 우리가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혁명운동을 다시금 조망하면서도 민족주의나 도덕주의, 진영논리에 갇히지 않는 면모를 보입니다. 그들에 대한 이해를 섣불리 도모하지 않고, 그들을 쉽게 비판하게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들을 덤덤하게 지켜보면서 새롭게 기억하기를 요청합니다. 오랜 투옥 생활 끝에 세상에 나온 노년의 여성이 드리우는 시선, 화사한 꽃들 너머에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여운을 깊게 남깁니다. (한창욱) 

2020년 11월

나는 보리 (김진유 감독, 2018)

<나는보리>에서 인상적인 점은 배리어프리버전이 아님에도 수어를 포함한 영화 속의 모든 대화가 자막으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영화 속의 중심 사건은 종종 우리가 영화에서 사소하게 여기고 주변부로 밀어두었던 소리와 자막이라는 구성요소를 떠올리게 합니다. 언뜻 안온하고 따뜻해 보이는 독립영화이지만, 얼마간 논쟁적인 지점을 갖춘 이 영화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이광호)

고무인간의 최후 (피터 잭슨 감독, 1991)

<고무인간의 최후>는 우리에게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잘 알려진 피터 잭슨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독특한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영화는 외계인과 인간의 싸움을 다룹니다. 감독인 피터 잭슨 자신이 배우로 출현하며, 메타적 작가로서 극 속을 배회하는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마치 신화 속 반인반수의 형상들처럼, 피터 잭슨은 인간도, 외계인도 아닌 신체로 변해갑니다. 이는 모더니즘 작가들이 자의식적으로 연출하는 자신을 인식하고, 그를 극 속에 녹여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면서도 그것을 연출적 표시가 아닌 인물 형상으로 변환시키는 것이 색다르게 다가옵니다. 4년간 본인의 자비로 찍은 영화이기 때문에 고어틱하면서도 전혀 실감 나지 않는 분장과 효과들이 보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김혜림)
2020년 12월

믹키 앤 닉키 (일레인메이 감독, 1976)

미국의 각본가이자 감독, 배우, 코미디언인 일레인 메이 감독의 1976년 영화 <믹키 앤 닉키>를 소개합니다. <믹키 앤 닉키>는 60~70년대 미국 인디펜던트 영화 씬을 이끌었던 배우이자 감독 존 카사베츠와 배우 피터 포크가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영화입니다. 최근의 사프디 형제로 이어지는 미국 독립영화의 경향성을 엿볼 수 있는 영화로, 인물들은 정해진 규칙이나 동기 없이 사건 위로 던져집니다. 이 과정에서 목적지는 인식할 수없이 뒤섞이고, 누군가의 집, 바, 무덤, 버스 등의 공간을 오갑니다. 도시를 정처 없이 떠도는 인물들을 바라보는 관객은 조마조마함과 답답함을 안은 채 영화를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연적인 이동들 속에서 인물들의 제스처와 즉흥연기는 영화가 산출하는 리얼리티의 방법론을 상기시킵니다. (김혜림)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커스틴 존슨 감독, 2020)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감독 커스틴 존슨이 자신의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다양한 죽음 상황을 연출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반드시 일회적 경험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다루면서 허구와 현실을 넘나드는 이 영화의 형식은 흥미롭지만, 단순히 형식을 위해 죽음을 소재로 삼기보다는 철저히 감독 본인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고민하기 위해 고안해 낸 방법이라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그런 면에서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개인적이고 소상한 고민들을 지속하고 확장할 수 있는 영화라는 조건, 픽션의 가능성이라는 질문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형식의 늪에 빠지지 않고, 죽음을 다루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 영화의 성격은 보는 이들에게 흥미를 더해주면서도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이광호) 

2021년 1월

스프링 브레이커스 (하모니 코린 감독, 2012)

하모니  코린 감독의 2012년 작품 <스프링 브레이커스>를 추천합니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감독이 작품 내 주인공들이 벌이는 각종 일탈 행위에 대해 이렇다 할 평가나 잣대를 들이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감독은 철저한 외부자이자 관조자로서 단지 카메라를 들고 인물들을 관찰할 뿐입니다. 감독이 이 영화에서 외부자로서 남아있는 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행위자가 네 명의 여대생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네 명의 여대생 무리 사이로 들어오는 한 명의 남성 행위자를 다룬 이 영화는, 오로지 인물들이 영화의 색감과 구도, 다양한 효과들을 조직하는 레버처럼 기능합니다. 감독은 괄호 쳐진 카메라 바깥에 서있죠. 인물들이 표현 및 형성하는 두려움과 긴장관계, 그리고 그를 둘러싼 감독의 관조적 태도는 이 영화가 가진 불협화음을 더욱 강조합니다. (김혜림)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2017)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다소 산만하고 정신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검은 머리 아가씨는 하룻밤 사이에 기묘한 소동에 휘말립니다. 짝사랑하는 선배의 눈에 들기 위해 갖은 애를 쓰다가, 그 과정에서 우연히 여러 사람의 사연에 얽힌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그 모든 과정과 뒤얽힘을 힘차게 헤쳐 나갑니다.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면 저 또한 절로 씩씩해지는 듯합니다. 힘차게 삶을 포옹하게 되는 힘을 얻게 된다고 할까요. 이 작품은 그러한 힘찬 기운과 여러 인물의 마음을 간결하면서도 선명한 색채, 뚜렷한 윤곽, 과장된 표현법을 통해 전달합니다. 다소 산만한 이 작품을 보고 여러분도 힘을 얻으셨으면 합니다. (한창욱) 

2021년 2월

바람의 언덕 (박석영 감독, 2019)

박석영  감독은 꽤 여러 작품을 만들었음에도 그리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처절한 상황을 들여다보는 그의 카메라는 때로 과하게 보이기도, 때로 고통의 이미지에 집착하는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시선이 고통에 대한 쾌락적 응시라기보다 같이 아픔을 느끼려는 응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만나오면서 점차 영화에 새겨지는 희망의 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람의 언덕> 또한 처절함의 이미지로 가득하지만, 종국에는 어떠한 희망으로 나아갑니다. 그렇다고 섣부르게 행복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관계라는 것이 고통의 원천이면서도 희망의 원천이라는 점을 ‘기억’하려  합니다. 장소는 그 기억을 되새기는 시공간으로 제시되며 관계 형성이란 문제를 장소성 형성이란 문제와 결부 짓습니다. 그것으로부터 이 영화는 자신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한창욱)  

더티 해리 (돈 시겔 감독, 1971)

이번  달 큐레이팅에서는 제가 즐겁게 보았던 돈 시겔의 영화를 한 편 추천하고 싶습니다. 돈 시겔은 미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영화감독으로, 우리에게는 <더티 해리>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돈 시겔의 작품 중 1973년 작인 <돌파구>는 은행 강도를 벌이다가 마피아와 경찰 모두에게 쫓기는 찰리 배릭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속도감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영화의 특성은 무조건 빠른 속도만이 영화에 긴장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유명한 시퀀스를 떠올리게 하는 마지막 장면은 특히 압도적으로 관객을 몰아붙입니다. 속도감 있는 액션과 섬세한 감정 표현은 어딘가 히피 운동의 실패 이후의 절망감을 떠올리게 합니다. (김혜림) 

2021년 3월

더 레슬러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2008)

이번  큐레이팅에서는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더 레슬러>를 추천합니다. 종종 미키 루크라는 배우의 이력으로 이야기되는 <더 레슬러>는 저에게 굉장한 몰입감을 선사한 영화 중 한 편입니다. 납작한 상징과 뻔한 드라마를 그대로 드러내는 <더 레슬러>의 외관은 리얼리즘적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끊임없는 신체 훼손을 극한의 리얼리티로 몰아붙이는 연출은 종종 그 현실적 감각의 과잉으로 환상적 순간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듭니다. 더불어 제작의 규모를 떠올리게 됩니다. 할리우드의 메인스트림에 비해 적은 돈으로 영화를 만드는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대개 영화 경험을 서술할 적에 고려되지 않는 ‘예산’이라는  조건이 영화의 표면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투박함을 스스럼없이 드러내어 종종 유치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치기 어림 자체를 적극적으로 내세운다는 점이 <더 레슬러>가 품은 매력 중 하나일 것입니다.(이광호)

사방지 (송경식 감독, 1988)

  영화는 군사 정권 시절의 3S 정책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이며, 2000년대 이전 한국영화에서 퀴어 섹슈얼리티를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과거 작품이라 퀴어 섹슈얼리티를 부정적으로 그리긴 하지만, 퀴어를 단순히 에로 영화의 대상화된 요소로 두지 않는다는 점, 퀴어의 존재를 전경화한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지점이 많습니다. 페미니즘 이론에서 많이 이야기되는 ‘비체’의  존재가 선연한 형태를 갖추고서 등장하고 계급 질서와 이성애 규범의 경계를 위반하는 무법자로서 퀴어가 등장하는데, 이는 당대 사회 규범 바깥에서 퀴어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유추하게 합니다. 두 주인공 배우의 연기와 캐릭터 구성도 인상적입니다. 한국 퀴어영화사 내부의 흔적을 확인하기 좋은 작품입니다. (한창욱)

2021년 4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토마스 알프레드슨, 2011)

  르 카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렛 미 인>의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스파이  영화’라는  전통 아래에서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증명해냅니다. 이 영화는 두꺼운 원작 소설의 복잡한 서사를 127분 러닝타임 안에 압축적으로 담습니다. 그 압축의 정도가 심하여 서사를 따라잡기가 버겁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버거움을 조금만 견디고 차분히 이 영화를 들여다본다면, 이 영화의 매력을 십분 느낄 수 있습니다. 인물이 아니라  주변 사물을 통해 서사를 함축하는 순간, 간략하면서도 암시적인 편집으로 서사를 압축하는 순간은 몇 번을 보아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공간의 공기 자체가 서사 진행을 압도하고, 서사는 다시 그 공기의 압력을 뚫고 앞으로 전진합니다.  이러한 두 힘의 작용이 피아彼我가  뒤섞이는  스파이 영화에 어울리는 긴장을 만듭니다. (한창욱)

더 레슬러 (코르넬 문드럭초, 2020)

넷플릭스로  공개된 코르넬 문드럭초의 <그녀의 조각들>은 동시대 영화의 위치를 은근하게 시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 초반에는 무려 30분 가까이에 달하는 롱테이크가 등장하는데, 영화 전반에서 이 시퀀스가 <1917> 등으로 대표될 만한 롱테이크가 전달하던 감각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일은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는 이야기상으로 영화의 종결부, 어떤 인물의 선택과도 관련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로버트 저메키스의 <플라이트>를 겹쳐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창작자로서 이미지의 매혹과 의문을 동시에 던지는 일, 그건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광호)

2021년 5월

타부 (미겔 고미쉬, 2012)

1부와 2부가 느슨히 연결되는 구성, 역사를 독특한 방식으로 다루는 <타부>는 바로 그 점 때문에 현대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와 더불어 같은 제목으로 인해 무르나우의 유작 <타부>와 비교되며 작은 영화사적 계보를 떠오르게도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도 충분히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지루함의 강박 없이 진한 정서를 품고 있다는 점이 저에게는 큰 미덕으로 다가옵니다. 근래 국내 개봉한 크리스티안 펫졸드의 <운디네>가 떠오르기도 하는 이 영화의 저돌적인 정념은, 한편으로 ‘동시대  영화’를  말하는 자리에서 형식에 대한 과도한 주목으로 인해 종종 느껴지는 무기력함을 가시게 하고 삶을 이어갈 힘을 줍니다. <타부>의 감성 짙은 활력을 많은 분이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광호)

질투 (필립 가렐, 2013)

제게  필립 가렐의 <질투>는 문을 여닫으면서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입니다. 한 장면이 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를 한 뒤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가면, 카메라는 이때 스르르 닫히는 문을 담습니다. 바로 맞붙는 장면은 어느 열린 문으로 인물들이 함께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곳에서 뭘 했으며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생략됩니다. 명료한 것은 그들이 한 곳을 경유해왔다는 사실뿐입니다. 뚜렷한 서사적 정보나 별다른 운동의 이미지도 없지만, 2000년대 이후의 필립 가렐을 따라온 관객이라면 어딘가를 드나든다는 움직임에 음각된, 흐르는 마음에 관한 비유를 읽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필립 가렐의 영화들은 대개 연애와 결별로 이뤄진 단순한 이야기, 건조하고 서늘한 흑백 화면으로 기억되지만, 사실 그는 매번 아주 판이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다음 작품이었던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에서, 그리고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눈물의 소금>에서도 그렇습니다. 그의 연인들을 계속 보고 싶은 것은 그 반복 속에서도 피어오르는 신비로운 차이들 때문입니다.  (이보라)

2021년 6월

120BPM (로빈 캉필로, 2017)

  영화에서 운동(movement)은 여러 의미로 표상됩니다. 에이즈 환자와 성소수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으로서의 운동은 물론, 밤이 되면 클럽에 모여 열렬히 춤을 추는 몸짓, 연인과 나누는 섹스 혹은 상대에게 위탁해 자신의 몸을 맡기는 수음까지. 이는 인물들이 토론과 논쟁으로 쏟아질 듯 내뱉는 대사의 활력, 그러한 인물들을 공동체라는 이름 안에서 빠짐없이 담아내려 분투하는 카메라의 시선, 그리고 이들이 통과하는 온 과정을 경쾌하게 따라가는 음악에도 여일하게 해당됩니다. 이 영화에는 온갖 종류의 움직임이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우리는 어디서든 길을 열지”라는 다짐에 함께하는 분이라면 이 육체적인 영화의 사랑과 정치와 욕망을 마음껏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이보라)

스케이트 (조은령, 1998)

조은령  감독의 <스케이트>는 10분 남짓한 단편영화입니다. 종종 단편영화는 상업영화로 가는 시험대이거나 장편화를 염두에 두는 일종의 예비 관문처럼 기능한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스케이트>는  더할 나위 없이 단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을 줍니다. 등장인물도 몇 없고 단순한 구성이지만, 오히려 그들이 짧은 시간 안에 놓인 점이 적잖은 인상을 남깁니다. 영화 감상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을 비틀자면, <스케이트>는 “짧아서” 강한 인상을 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편으로 성급히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크건 작건 어떤 사건을 맞닥뜨린 인물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케이트>는 그 마음을 함부로 단속하거나 교정하려 들지 않고 지긋이 바라보는 태도를 지닙니다. <스케이트>를 비롯한 조은령 감독의 작품들은 유튜브를 통해 쉽게 관람할 수 있으니, 많은 분들이 찾아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이광호) 

2021년 7월

유레루 (니시카와 미와, 2006)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오래전 어느 인터뷰에서 “가족이란  그야말로 혼잡한 우주”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어떨 때 가족은 사회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 같지만 사실 그 기본이라는 전제는 매우 인위적이고 변변찮기도 합니다. 이 모순적인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꾸준히 고심해온 이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저는 특히 <유레루>를 좋아합니다. 외모도 말투도 성격도 다른 두 형제는 각각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의 목격자와 용의자가 됩니다. 진실은 급물살에 휩쓸려 사라져버리고, 남은 사람들은 증언과 변호로 그날의 아귀를 끼워 맞춥니다. 하지만 ‘본  것은 모두 진실인가’라는  질문을 거듭하면서 영화는 더 심원한 차원으로 나아갑니다. <유레루>는 자신조차 스스로를 믿을 수 없을 만큼 흔들리는(유레루ゆれる) 마음의 파동을 찬찬히 묘사하는 영화입니다. (이보라)

내 언니 전지현과 나 (박윤진, 2020)

여가  시간에 게임을 즐기긴 하지만 MMORPG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터라 그쪽 세계는 저와 무관하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박윤진 감독의 <내언니전지현과 나>를 보았을 때, 낯설지만 익숙한 영토 하나를 발견한 듯했습니다. 흔히 ‘청년  세대’라고  하는 집단의 면모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세대를 하나로 포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주목해야 하는 집단적, 개인적 형상을 게임의 세계를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자기들만의 영토를 지키는 파수꾼의 모습, 자동 수행 명령어를 둘러싼 서로 다른 입장, ‘부캐’와의  동일시, 온-오프라인을 오가는 경계 횡단, 비정치적으로 보이는 정치적 결사 혹은 정치적으로 보이는 비정치적 결사 같은 우리 사회의 여러 면모가 이 영화에 담겨 있습니다. (한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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